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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위클리에듀교보

위클리에듀교보 2018 no.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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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에듀교보는 행복한 아이, 즐거운 가족을 위해 교보생명에서 제공해 드리는 양육 도움 정보지입니다.


Sound first! 소리가 먼저입니다


영어 사교육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이지만 정작 외국인을 만나면 ‘제대로 된 영어’를 구사하지 못해 절절매는 현실이 ‘대한민국 영어의 현주소’입니다. 내 아이만큼은 영어로 고통받지 않길 바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좋다는 영어 전집을 들이고 입소문 난 영어 학습법을 따라하지요. 그런데 뭔가 조금 아쉽지 않던가요? 왜 이런 교수법이 좋은 건지, 그렇게 따라하는 게 정말 맞는 건지 의문이 들 때가 있지 않던가요? 그래서 ‘외국어로서’ 영어를 학습하려면 우리가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영어에 접근하는 게 효과적인지 신경학적 관점에서 분석했습니다.


기획 박시전 기자 글 박순(<뇌과학으로 알아보는 혁신적 영어 학습법> 저자) 일러스트 이현주



낯선 외국어를 들었을 때 신생아의 반응은?


크리스틴 문이라는 학자는 태어난 지 불과 하루밖에 되지 않은 갓난아기가 모국어가 아닌 새로운 말소리를 들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연구한 결과를 2013년에 논문으로 발표했습니다. 미국 아기 40명과 스웨덴 아기 40명이 실험 대상으로 생후 7~75시간 된 신생아들이었습니다. 아기들 입에 엄마 젖꼭지와 비슷한 장치를 물려 아기가 젖을 얼마나 자주 빠는지 측정했습니다. 그리고 귀에 닿은 헤드셋을 통해 80명의 아기들에게 외국어 모음을 들려주자 아기들이 더 열심히 젖을 빨더랍니다. 이 반응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외국어 소리에 공포를 느꼈거나 신기하게 여겼다는 뜻이죠. 갓 태어난 아기들이 평균 33시간 만에 모국어 모음을 배우는 것은 가능하지 않으니 연구자들은 이 아기들이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모국어 소리를 익혔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실 태아는 임신 5개월쯤 되면 해부학적으로 귀가 완성되고 외부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 만큼 낯선 외국어는 불안감이나 모험심을 자극합니다.


아이의 귀에 영어는 ‘낯선 음악’입니다


사람의 귀가 소리의 높낮이(음조)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은 언어학계에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말과 영어는 말소리의 높낮이 분포가 서로 다를까요? 제가 얼마 전 파일럿 연구로 진행한 분석 결과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세계의 주요 7개 언어(한국어/미국 영어/영국 영어/프랑스어/독일어/스페인어/중국어)의 음향 특성을 분석하였으며 그중 3개 언어에 대한 데이터입니다. 표의 가로축에서 왼편은 낮은 음이고 오른쪽으로 갈수록 높은 음입니다. 그래프 선이 위로 올라갈수록 해당 음 높이의 소리가 많이 쓰인다는 뜻입니다. 우선 미국 영어와 영국 영어를 비교해보면 영국 영어가 미국 영어에 비해 높은 음이 차지하는 비율이 훨씬 높습니다. 우리말 곡선은 어떤가요? 한국어는 낮은 음의 비중이 아주 큰 언어로군요. 영국 영어보다는 미국 영어가 우리에겐 음향적으로 좀 더 친근하게 보이긴 하지만, 아이들 귀에는 두 가지 영어 모두 ‘색다른 음악’으로 다가갈 것 같습니다. 더구나 사람의 귀는 모국어에 따라 저마다 다르게 반응하는 ‘운동세포’를 갖고 있습니다.


귓속의 운동세포 덕분에 뇌는 ‘듣고 싶은 것’을 듣습니다


우리 귀 깊숙한 곳에 있는 피아노 건반, 즉 청각세포는 한쪽 귀에 약 3500개나 있습니다. 달팽이관 속에 들어 있는 이 건반들은 특이하게도 뇌의 명령을 받는 운동세포 덕분에 더 확실하게 소리에 반응합니다. 1초에 수만 번까지 늘어났다 줄어드는 ‘프레스틴’이라는 이 운동세포 덕분에 시끄러운 식당에서 가족과 대화를 이어가는 게 가능합니다(칵테일파티 효과). 그런데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는 소음에 매우 약해서 조금만 소란해도 조용할 때는 어렵지 않게 들었던 말도 잘 알아듣지 못하게 되죠. 아직 학술적으로 명확하게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귀에 있는 이 운동세포들은 모국어 특유의 소리 특성에 맞게 반응하도록 조율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귀는 그저 수동적으로 소리를 수신하기만 하는 장치가 아닙니다. 두뇌에서 내리는 명령을 전달하는 회로가 방금 이야기한 운동세포를 향해 아주 많이 뻗어 있기 때문이죠. 즉, 뇌는 ‘듣고 싶은 것’을 듣습니다.


ABC보다 영어 말소리에 먼저 익숙해져야 하는 이유


초등학교 저학년 이전 아이라면 모국어를 배울 때처럼 우선 영어 말소리에 귀가 익숙해지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에 영어 유창성에 관해 오랜 기간 다양한 실험을 진행해온 연구자들은 동의합니다. 그래야 ‘낯선 음악’에 대한 무의식적인 거부반응을 줄일 수 있고 ‘운동’으로서 영어를 익히기 위한 기본기가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우리 환경에서는 영어가 일상적으로 쓰이지 않으니 영어동요 CD를 아침에 일어날 때, 잠자리에서 매일 틀어주거나 아이가 재미있어하는 영어로 된 동영상을 하루 1~2시간 보여주는 것을 추천합니다. 무엇보다 좋은 방법은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엄마 아빠가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영어책을 소리 내어 읽어주는 ‘무릎 영어’입니다. 비록 음향적 특성이 영어에 맞지는 않을지 모르나 부모가 영어를 읽어주는 그 자체로 아이는 낯선 외국어에 청각적 애착을 품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죠.


profile. 박순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밌고 효과적으로 영어를 배울 수 있을지 고민하는 영어교육자. ‘외국어로서의 영어’를 학습하는 데 있어 ‘뇌과학’이 제공한 중요한 단서를 바탕으로 신경학적 관점에서 ‘영어두뇌’에 대해 연구 중이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영어교육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에서 ‘신경언어학과 영어교육’을 강의하고 있다. <아이의 영어두뇌>, <뇌과학으로 알아보는 혁신적 영어 학습법>의 저자이며,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중학사이버영문법>과 EBSLang <EBS 대표 영문법> 등 교재를 개발했다. KBS <스페셜다큐>, EBS <다큐프라임>의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