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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위클리에듀교보

위클리에듀교보 2018 no.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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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에듀교보는 행복한 아이, 즐거운 가족을 위해 교보생명에서 제공해 드리는 양육 도움 정보지입니다.


숫자 쓰기보다 ‘읽기’에 먼저 주목해야 하는 이유


‘수학’ 하면 복잡한 수식과 계산이 떠오르나요? 식은땀이 나고 골치가 지끈지끈 아파오나요? 나온교육연구소 박영훈 소장은 더 이상 문제풀이식 수학으로 아이들을 괴롭혀선 안 되며, 수학의 진정한 즐거움을 알기 위해서는 유아 때부터 수학에 대한 개념을 올바르게 세워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기획 박시전(베스트베이비 기자) 박영훈(나온교육연구소 소장) 일러스트 곽은지



한국어가 정말 수학에 적합한 언어일까요?


2014년 9월 13일, 저녁 뉴스의 진행자는 밝은 표정과 약간 들뜬 목소리로 다음 소식을 전했습니다. 과학적 언어인 한국어가 수학 학습에 매우 유리하며 그 때문에 한국 아이들이 수학을 잘 한다는 내용이었죠. 뉴스를 접한 국민들은 아마도 이를 사실처럼 받아들였을 겁니다. 물론 가짜 뉴스는 아니었습니다. 뉴스의 출처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 저널>에 게재된 ‘수학에 가장 적합한 언어(The Best Language for Math)’라는 제목의 기사였습니다. 이 칼럼에는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매우 과학적이며, 그 이유는 십진법 체계에 꼭 들어맞는 숫자 읽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기술되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6432는 ‘육천·사백·삼십·이’라고 읽는데, 1000이 6이므로 ‘육천’, 100이 4이므로 ‘사백’, 10이 3이므로 ‘삼십’, 1이 2이므로 ‘이’가 결합된 겁니다. 이런 방식으로 아무리 큰 숫자도 0부터 9까지 열 개의 숫자와 자릿값을 뜻하는 ‘일, 십, 백, 천, 만…’으로 표기할 수 있으니 정말 과학적이고 편리하기 짝이 없다는 거죠. 하지만 영어권 문화에서는 이런 숫자 읽기가 참으로 신기했나 봅니다. 가령 두자리 숫자인 ‘10, 11, 12, 13…’과 ‘20, 21, 22, 23…’을 영어로 어떻게 읽는지 살펴볼까요. 



위 표에서 알 수 있듯 ‘ten, eleven, twelve, thirteen…’과 같이 어떤 특정한 규칙을 찾기 어렵습니다. 20부터는 ‘twenty, twenty-one, twenty-two, twenty-three’와 같이 규칙적으로 읽는 게 가능하지만, 10부터 19까지는 어쩔 수 없이 암기해야만 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이외에도 13과 30은 각각 thirteen과 thirty로 읽어야 하는 등 숫자 읽기를 처음 배우는 아이들에겐 정말 쉽지 않습니다. 아마도 해당 기자는 영어로 숫자 읽기의 이런 불편함과 비교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수 읽기 방식에 주목했을 겁니다. 하지만 숫자 읽기를 익히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못할 만큼 우리 언어가 규칙적인 속성을 지녔을까요? 다음에 제시한 숫자를 읽어보세요.

‘2번’ 아마도 대부분 ‘2(이)번’이라고 읽을 겁니다. 가령 네 개의 문항 중 하나를 택할 때 ‘문제의 정답은 2번입니다’라고 말하니까요. 그런데 똑같은 숫자 표기임에도 ‘이번’이 아니라 ‘두 번’이라고 읽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컨대 약봉지에 ‘하루 2번 복용하시오’라고 쓰여 있을 때에는 ‘두 번’이라고 읽어야 합니다. 같은 아라비아숫자지만 맥락에 따라 이처럼 다르게 읽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아래 시각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10(열)시 10(십)분’입니다. 시각을 나타낼 때에는 ‘1(한)시, 2(두)시, 3(세)시’로, 분을 나타낼 때에는 ‘1(일)분, 2(이)분, 3(삼)분’으로 읽습니다. 참 복잡하죠.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요? 이는 한자어권에 속하는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입니다. 순우리말과 한자어라는 이중구조가 숫자 읽기에 적용된 거죠. 고로 우리 아이들은 ‘하나, 둘, 셋’ 같은 순우리말 수 단어와 함께 ‘일, 이, 삼’ 같은 한자어 수 단어를 모두 익혀야 합니다. 그렇다면 외신에서 보도한 ‘수학에 적합한 언어’라는 찬사는 명백한 오보입니다. 기사를 쓴 기자는 우리나라가 한자어권에 속한다는 사실만 생각했지 한국 고유의 언어가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미처 생각지 못했을 겁니다. 어쨌든 우리나라 아이들의 ‘숫자 읽기 공부’가 다른 나라 아이들에 비해 결코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사실 ‘하나, 둘, 셋, 넷’ 같은 순우리말은 아이들도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합니다. 반면에 ‘일, 이, 삼’ 같은 한자어는 구어보다 문어에 많이 등장합니다. 이 때문에 한자어보다 우리말 단어를 더 많이 아는 건 당연합니다. 이 현상은 만 3세에 이르면 역전되는데 우리말은 ‘일곱’까지 그리고 한자어는 ‘구’까지 확장됩니다. 왜 그런 걸까요? 한자어는 ‘일, 이, 삼, 사, 오, 육, 칠, 팔, 구’와 같이 한 음절로 이루어져 쉽게 터득할 수 있지만, 우리말은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등 두 음절이라 발음도 쉽지 않을뿐더러 암기하기도 어렵기 때문일 겁니다. 이러한 현상은 5세부터 더욱 급격하게 가속화됩니다. 우리말은 ‘스물(20)’까지만 아는 반면, 한자어는 ‘사십구(49)’까지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급격한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만 4세가 지나면서 아이들 또한 한자어 수 단어 내에 포함된 ‘일종의 패턴’을 알아채기 때문일 거라 짐작합니다. 사실 한자어 수 세기 단어는 ‘일, 이, 삼…구, 십’까지만 익히면 그다음은 규칙에 따라 자동적으로 생성됩니다. 예를 들어 ‘20(이십), 30(삼십)…80(팔십), 90(구십)’은 각각 십이 두 개, 십이 세 개…십이 아홉 개라는 걸 쉽게 파악할 정도로 단순하고 일정합니다. 반면에 순우리말인 ‘스물, 서른, 마흔, 쉰, 예순, 일흔, 여든, 아흔’에서는 규칙성을 찾기 힘듭니다. 따라서 일일이 암기할 수밖에 없지요. 이를 체계적으로 익히지 못하면 초등학교 입학 후에도 숫자 읽기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


다음과 같은 형식의 문제를 접해야 수 단어 학습에 도움이 됩니다


<예시>



숫자를 익힐 때 쓰기 못지않게 ‘읽기’가 왜 중요한지, 그리고 숫자 읽기가 능숙해지려면 얼마나 많은 연습이 필요한지 알아보았습니다. 위 연습이 충분히 이루어진다면 한자어와 순우리말이라는 한국어 특유의 이중구조로 인해 숫자를 읽을 때마다 겪었던 혼란이 많이 줄어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