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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위클리에듀교보

위클리에듀교보 2017 no.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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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에듀교보는 행복한 아이, 즐거운 가족을 위해 교보생명에서 제공해 드리는 양육 도움 정보지입니다.


단호박 내 아이의 유별난 질서 사랑


아직 제대로 의사 표현도 못하면서 자기가 생각한 대로 안 되면 버럭 짜증을 내는 어린 독재자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알다가도 모를 아이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기 위해 <베스트베이비> 박시전 기자가 관악아동발달심리센터 김이경 소장에게 물었습니다.

기획·글 박시전(베스트베이비 기자), 김이경(관악아동발달심리센터 소장) 사진 이성우(G1 studio)




아이들은 질서와 규칙을 좋아하는 존재?


박 기자 ▶ 순식간에 온 집 안을 어지르는 재주를 가졌으면서, 또한편으로는 질서와 규칙을 좋아하는 걸 보면 참 아이러니해요.

김 소장 ▶ 사소하고 엉뚱한 질서에 집착하는 마음을 이해하려면 먼저 아이의 나이와 발달 단계를 고려해야 합니다. 상담실에서도 엄마들에게 아이의 특이한 규칙에 대한 고민을 많이 듣곤 하는데, 최초 시기는 대개 만 2세 무렵입니다. 두 살은 변화가참 많은 시기예요. 그동안 입으로 물고 빨며 감각으로 세상을 경험했던 아이는 점점 머릿속에 상징을 만들어갑니다. 그런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에요. 예를 들어 보고 만지는 과정을 통해 공이 ‘둥근 것’, ‘구르는 것’이라는 정보를 얻었다면 ‘공’이라는 말을 합쳐 생각 창고에 분류합니다. 그런데 이런 식의 작업이 수없이 많아요. 쏟아지는 뒤죽박죽한 정보를 잘 정리해 기억하려면 마치 도서관의 책 분류처럼 자기만의 규칙이 있어야 더 효율적이겠지요. 그래서 처음 신발이라고 인식됐던 게 운동화라면 한동안 아이에게 샌들은 신발이 아닐 수 있습니다. “물 줘”라고 해서 아무컵에나 물을 따라 주면 “아니야” 고개를 가로젓다가 자기가 정해 놓은 컵에 따라줘야만 마시기도 하고요. 아이가 특정 질서나 규칙을 고집하는 건 혼란스러운 세계를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세계로 정돈해가는 과정이라 볼 수 있습니다.

박 기자 ▶ 지켜보는 부모 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르기도 해요. 아이가 하자는 대로 내버려두기에는 너무나 효율적이지 못한 방식투성이니까요. 그래서 설득도 해보고 마음도 읽어주지만 쉽게 변하지는 않죠. 언제쯤 상황이 나아질까요?

김 소장 ▶ 이런 식의 자기 규칙은 설득이 잘 안 되는 게 특징이에요. 인지 능력이 발달하는 과정으로 본다면 7세 무렵까지는 이런 식의 고집이 계속될 겁니다. 아직 사물의 변화를 다양한 관점으로 이해하기 어렵거든요. 예를 들어 기다란 컵에 들어 있던 물을 높이가 낮고 넓은 컵에 붓습니다. 그리고 원래 컵에 있던 물의 양과 같은지 물어보면 대부분 아이가 다르다고 답합니다. 아이들은 컵에 담긴 물의 높이나 넓이 중 한 가지 차원만 보기 때문이죠. 특히 물건의 위치가 바뀌는 것에 민감한 아이가 있는데 이는 자기중심적 공간지각 능력과 관련이 있습니다. 아이는 자기가 앉아 있는 쪽에서 바라본 사물의 모양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위치가 바뀌는 것만으로 그 사물 자체가 달라진다고 느낄 수 있어요. 그러니 되도록 아이가 원하는 위치에 물건을 놔주고 그다음에 “우리 자리를 바꿔서 한 번 볼까?”라며 다양한 시점에서 볼 수 있게 해주세요. 이렇게 하면 아이는 처음 자기 자리에서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것들을 많이 발견하며 이해하게 되죠.


엄마들의 흔한 고민, 특정 옷만 고집하는 아이


박 기자 ▶ 특정 옷이나 신발 등을 고집하는 경우가 참 많아요. 마치 ‘외출 의식’처럼요. 이런 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김 소장 ▶ 대부분 감각 문제와 관련이 깊어요. 촉감이 낯선 옷보다는 늘 입고 적당히 해지기도 하고 자기 냄새가 밴 옷을 더 좋아합니다. 특히 익숙한 집이 아니라 낯선 곳, 스트레스를 느낄 만한 장소에 갈 때는 익숙한 옷이 더 안정감을 주는 게 사실이고요. 이 또한 아이 입장에서는 일종의 의식, 규칙일 수 있죠. 이럴 때는 되도록 아이가 고른 편한 옷을 입히는 게 낫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어떤 옷을 싫어하고 좋아하는지 특징을 파악해 비슷한 재질이나 디자인의 옷으로 서서히 종류를 바꿔보세요. 아이가 치마만 입으려고 한다거나 캐릭터 옷을 입겠다고 옷 투정을 하는 건 또 다른 유형입니다. 만 5세 무렵에 이런 모습을 유독 많이 보이는데 이는 다른 사람에게 예쁘고 멋지게 보이고 싶어하는 ‘사회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어느 쪽이든 단벌 신사로, 과한 스타일로 패션 테러리스트가 되기 쉽지만 다행인 건 어쨌든 이 또한 지나간다는 겁니다. 이때의 사진을 잘 찍어두면 오히려 두고두고 웃음꽃 필 추억거리로 남을 거예요.

박 기자 ▶ 질서에 대한 집착이 심리나 발달적인 문제에서 기인한 경우도 분명 있을 텐데, 어떻게 구별할 수 있나요?

김 소장 ▶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발달 문제로 인한 집착인지, 아니면 통상적인 경우에 해당되는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인지 구분이 까다로워요. 이럴 때는 아이의 눈맞춤, 호명 반응, 관심 끌기, 공동 관심사를 나누며 놀이하기 등 사회성이 발달하는 신호를 보이고 있는지 살핍니다. 만일 이런 신호가 보이지 않거나 다른 아이들보다 빈도가 적고, 언어나 신체 발달도 더디다면 발달검사를 받는 등 점검이 필요합니다. 다만 기질이 까다롭거나 감각이 예민한 아이들도 다양한 질서와 규칙을 지키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아이에게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어요. 꼭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한창 자율성과 주도성이 발달하는 만 2~5세 아이는 ‘내가 이 상황을 컨트롤해야 안전하다’고 느끼는 경향이 강하다는 사실입니다. 컨트롤하기 위해서는 예측 가능한 환경이 필요하고, 그래서 질서를 정해놓으려는 것이지요. 이 예측 가능한 환경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주 양육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돌보는 사람이 자주 바뀌거나 돌보는 사람의 기분이 자주 변하면 아이는 안정감을 찾기 위해 더욱더 특정한 규칙에 집착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전과 달리 유독 특정 규칙에 집착하고 짜증이 심해졌다면 이런 심리적인 이유는 없는지 살펴보세요. 힘들 때 어떤 질서보다 엄마 품에, 아빠 팔에 매달려 쉴 수 있다면 충분히 행복한 아이로 자랄 겁니다.


자기만의 질서 고집하는 아이, 유연성 키우기


일단 존중부터! 못하게 막으면 불안해서든 반발심 때문이든 집착이 더 심해지게 마련. 위험한 것만 아니라면 지켜보며 기다려준다.

규칙에 대한 집착을 놀이로 바꿔보자 아이 혼자서만 반복하면 자기 세계에 빠지기 쉬우니 함께 하는 놀이로 유도하자. 예를 들어 아이가 특정 보도블록만 밟으려 한다면 놀이터나 공원에 가서 사방치기처럼 특정한 칸을 밟고 뛰는 식의 놀이를 해볼 것.

예민한 감각이 원인인지 살핀다 몸이 불편하면 더 예민해져서 자기만의 틀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있다. 몸이 편한 옷, 안정감을 주는 소리 등 부드러운 자극으로 이완시켜주자.


profile. 김이경


놀이로 아이들과 소통하며 마음을 치유하는 아동심리상담사. 놀이가 아이와 부모를 잇는 다리가 되어줄 거라 믿으며 상담실에서 많은 부모와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관악아동발달심리센터 소장으로 <베스트베이비>, <앙쥬> 등 여러 매체에 육아 칼럼을 기고한다.


profile. 박시전


궁금증, 호기심 많은 15년차 육아지 기자. 아이 키우며 궁금한 게 생길 때면 편집회의와 꼼꼼한 취재를 거쳐 기사화하고야 마는 생활밀착형 육아 전문 에디터로 현재 <베스트베이비>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