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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위클리에듀교보

위클리에듀교보 2017 no.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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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에듀교보는 행복한 아이, 즐거운 가족을 위해 교보생명에서 제공해 드리는 양육 도움 정보지입니다.


수 세기와 수 감각, 어떻게 다를까요?


나온교육연구소 박영훈 소장은 수학이 단지 입시 도구로 전락해버린 한국 사회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더 이상 문제풀이식 수학으로 아이들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유아기부터 수학에 대한 개념을 올바르게 세워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제대로 수학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

기획 박시전(베스트베이비 기자) 글 박영훈(나온교육연구소 소장) 사진 추경미(G1 studio)




다영이와 다혜는 26개월 된 쌍둥이입니다. 얼마 전 쌍둥이 자매의 엄마가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아이들 앞에 사과 세 개를 놓고 이렇게 말했어요. 

“자, 여기 있는 사과 한번 세어볼까?”

두 아이가 합창하듯 박자까지 맞추며 외치더군요. 

“하나, 둘, 셋!”

그래서 “사과가 몇 개 있어?” 하고 물었죠.

다영이는 곧바로 ‘네 개요’ 했고

다혜는 ‘하나, 둘, 셋’이라고 다시 반복하더라고요.


다영이와 다혜는 분명 ‘하나, 둘, 셋’ 같은 수를 세는 데 필요한 단어를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단어를 순서에 따라 차례대로 말할 수도 있고요. 그럼에도 이 쌍둥이 자매는 사과가 모두 세 개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답하지 못합니다. 이런 일이 왜 생기는 걸까요? 수 세기는 아이들이 태어나 최초로 접하는 ‘수학적 활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수 세기 능력이 과연 무엇이고, 또 그 능력이 어떻게 형성되어가는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수 세기 이전에 나타나는 ‘수 감각’


생후 6개월 된 아기 앞에 과자 두세 개를 놓았다가 잠시 시선을 돌리게 한 뒤 하나를 감춥니다. 그러면 아이는 앞에 놓여 있던 과자 개수의 변화를 인지합니다. 비록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변화된 양이 몇 개인지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앞에 있던 과자에 모종의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은 알아차립니다. 우리는 이를 ‘수 감각’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수 감각은 학습되기보다는 선천적인 것으로 봅니다. 발달심리학 분야의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하는데요. 생후 6개월 아기에게 물체가 세 개 그려진 그림을 보여주는 실험을 진행합니다. 계속 보여주면 아이는 이내 흥미를 잃습니다. 그림의 종류 를 바꿔도 반응은 별반 다르지 않지요. 그런데 그림 속 물체의 개수를 두 개 또는 네 개로 바꾸면 아이는 다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기의 이러한 반응은 순전히 수 감각에 따른 것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이 같은 실험 결과를 토대로 태어난 지 하루 또는 사흘밖에 되지 않은 신생아도 두 개와 세 개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수 감각이 선천적이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수 감각은 인간 이외의 다른 동물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음에 소개하는 까마귀의 일화는 수학자 토비아스 단치히(Tobias Dantzig)가 집필한 <과학의 언어, 수>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각색한 겁니다.


옛날 한 성주의 농장에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 들어왔다. 까마귀는 곡식이 쌓인 헛간에 둥지까지 틀고 곡식을 야금야금 훼손했다. 못된 까마귀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했던 성주. 하지만 헛간에 가까이만 가면 이를 눈치챈 까마귀가 훌쩍 날아올라 나무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닌가. 그러고는 사람이 헛간에서 나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둥지로 되돌아오는 것이었다. 고민하던 성주는 한 가지 꾀를 낸다. 친구와 함께 헛간에 들어간 다음 시간이 흐른 뒤 총을 든 친구만 헛간에 남겨두고 혼자 걸어 나온 것. 하지만 영리한 까마귀는 속아 넘어가지 않았고 남아 있던 친구가 헛간에서 나올 때까지 나무에 앉아 기다렸다. 다음 날 성주는 친구 두 명을 더 불렀고 셋이 함께 헛간에 들어갔다가 마찬가지로 한 명만 남겨두고 헛간에서 나왔다. 그러나 까마귀는 여전히 인내심을 발휘하며 나머지 한 명이 나오길 기다렸다가 둥지로 되돌아갔다. 오기가 발동한 성주는 차츰 사람 수를 늘렸고 마지막으로 다섯 명이 함께 헛간으로 들어갔다가 넷만 밖으로 나오자 그제서야 까마귀는 둥지가 있는 헛간으로 들어가버렸다. 결국 성주의 지혜와 참을성 덕택에 까마귀 제거 작전은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었다.


이 일화를 읽고 혹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진 않으셨나요? ‘까마귀는 수를 넷까지 셀 수 있다. 다섯이 넘는 수는 셀 수가 없다.’ 글쎄요, 정말 까마귀한테 수를 세는 능력이 있는 걸까요? 까마귀의 행동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는 수 세기가 아니라 ‘수 감각’이라고 봐야 합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소개한 것은 ‘수 세기’와 ‘수 감각’은 엄연히 다르며 이를 구별해야 한다는 걸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수 감각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본능입니다. 하지만 수 세기는 후천적으로 학습해야 하는 ‘지적인 능력’이지요.


수 세기는 아이의 생애 최초 수학 학습


인간에게는 동물과 다른 능력이 있습니다. 바로 ‘배움’입니다. 특히 지적인 능력이 발휘되는 배움의 세계에 뛰어들면서부터 동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인간의 능력을 발휘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수 세기는 본능적이라 할 수 있는 수 감각과는 전혀 다른 지적인 능력인 것이죠. 처음에는 보잘것없는 수 감각만을 지녔을 뿐이지만 차츰 배움이라는 학습 과정을 통해 ‘하나, 둘, 셋’에서 출발한 수 세기는 시간이 흐르며 ‘만, 천만, 억, 조…’ 등의 큰 수는 물론 무한개의 개수까지 세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수 세기는 아이가 생애 최초로 접하는 수학적 활동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아이에게는 수에 관한 최초의 ‘수학적 개념’이 형성되지요. 그러므로 수 세기는 본능이랄 수 있는 수 감각과는 구별되는 지적인 활동인 겁니다. 이 사실을 터득하기까지는 몇몇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나열해보자면 ‘수 단어 말하기’, 수 단어와 수 세기 대상을 하나씩 짝짓는 ‘일대일 대응’,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 단어가 전체 개수라는 ‘사실 인식’ 순이 될 겁니다.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수 세기 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점에서 각각의 단계를 소홀히 지나칠 수 없겠지요. 그리고 당연하게도 수 세기 능력은 앞으로 전개될 수학적 사고의 토대가 됩니다. 수 세기를 배우는 과정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지요.


profile. 박영훈 박사


서울대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미국 몬태나 주립대학에서 수학 M.A를 취득하였다. 이후 홍익대 수학교육과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수학교육 전문가들과 함께 ‘생활 속의 수학’을 만들고자 수학 대중화에 힘쓰는 중이다. 아이스크림 연수원에서 초등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제7차 교육과정 중고등 수학 교과서를 집필했으며 <당신의 아이가 수학을 못하는 진짜 이유>(동녘), <기적의 유아 수학>(길벗) 시리즈 등 다수의 수학서를 집필했다. <베스트베이비> ‘박영훈의 수학 탐험대’ 칼럼을 통해 유아 수학의 기본을 짚어주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