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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위클리에듀교보

위클리에듀교보 2017 no.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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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에듀교보는 행복한 아이, 즐거운 가족을 위해 교보생명에서 제공해 드리는 양육 도움 정보지입니다.


이럴 땐 어떤 병원에 가야 하나요?


‘언제, 어떤 병원에 가느냐’는 아이 키우는 부모라면 종종 마주할 수밖에 없는 고민일 겁니다. 병원 선택 기준에 대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정재호 선생님에게 명쾌한 조언을 들어보았습니다.

기획 박시전(베스트베이비 기자) 글 정재호(대전 엠블아동병원 소아청소년과 원장) 사진 이성우(G1 studio)




특정 진료 과목의 전문의가 되려면 수련의·전공의 단계를 밟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누구나 반드시 한 번은 거쳐 가는 곳이 있는데 바로 응급실입니다. 응급실에 배치된 수련의(또는 전공의)는 일단 응급실을 찾아온 환자의 응급처치가 끝난 다음 해당 질환 진료과 의사에게 진료를 의뢰하는 보고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환자를 어느 과에 보고해야 할지’ 결정한다는 게 참 쉽지 않습니다. 요즘이야 응급실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있어서 그 의견에 따르면 되지만, 과거에는 각 환자를 어느 진료과로 연결할지 수련의 혼자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환자를 어느 과로 보내야 할지’ 정해야 하는 것이야말로 수련의 근무 기간 중 가장 곤혹스러우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일 같습니다.

‘이럴 땐 어떤 병원에 가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 역시 생각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며, 딱히 정해진 매뉴얼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서 갖추고 있는 지식과 쌓아온 경험치를 바탕으로 ‘상식’ 선에서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응급실에 가야 하는 ‘응급’한 상황은?


어떤 증상이 응급실에 갈 만한 상황인지에 대해서는 일단 법으로 정해진 기준이 있습니다. ‘응급의료관리료’라 해서 응급 또는 응급에 준하는 증상이 아닌데 응급실을 이용한 경우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있는데요. 만약 이 응급의료관리료를 냈다면 응급 상황으로 인정받지 못한 겁니다.

영유아 및 소아에서 응급이라고 할 만한 상황을 살펴보면 머리에 외상을 입은 경우, 의식을 잃은 경우, 구토나 기타 원인으로 인한 심한 탈수, 약물이나 기타 물질의 과다복용 또는 중독, 심한 화상이나 골절, 응급수술이 필요한 급성 복증, 지혈되지 않는 출혈, 호흡곤란, 배뇨장애, 열성 경련, 화학물질이나 외상에 의한 안구 손상, 갑작스런 시력 소실, 공휴일이나 야간에 나타난 소아의 38℃ 이상 발열, 귀·눈·코·항문 등에 이물이 들어가 제거술이 필요한 경우 등이 해당됩니다. 발열을 제외하면 한참 생각해봐야 할 일이 아니죠. 누구라도 상식적으로 ‘어이쿠, 큰일 났구나’ 싶은 상황이니까요.

위와 같은 응급 상황인데도 동네 소아청소년에 찾아와 대기실에서 한참 기다리다가 진료실로 들어오면 무척 곤혹스럽습니다. 정도에 따라서는 진료실에서 처치할 만한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바로 응급실로 이송해야 합니다. 의사가 아닌 같은 부모 입장에서 요약하자면 ‘지금 우리 애는 대기 순서를 기다려 진료받을 상태가 아니다’ 싶을 때는 응급실로 가는 게 맞다고 봅니다.


안과•이비인후과•피부과 등은 언제 가는 건가요?


진료 과목이야 많지만 여기서는 ‘일차 진료’를 담당하는 과목과 ‘전문 진료’를 담당하는 과목으로 나누어 설명해보겠습니다. 언뜻 보기엔 무조건 전문 진료 의사를 찾아가는 게 좋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전문 진료를 담당하는 의사가 때로는 ‘전문’인 질병 이외에는 오히려 잘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죠. 전문 진료를 담당하는 의사들은 대개 일차 진료를 한 의사의 의학적 판단에 따라 의뢰된 환자를 진찰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자꾸 눈을 깜빡일 때 엄마 생각에는 틱 장애인지 염려되지만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자니 일이 너무 커지는 것 같아 안과를 먼저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알레르기결막염 등 안과적 문제가 없다면 안과에서는 “안과적으로는 이상이 없다”고 할 테니 엄마는 더 걱정되겠지요. 하지만 아이를 자주 본 동네 소아청소년과 의사라면 그동안 알레르기비염 여부에 따라 틱이나 알레르기결막염 중 좀 더 가능성 높은 쪽으로 진단하고 필요한 처방이나 진료 의뢰를 적절히 내릴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정신건강의학과나 안과가 ‘전문 진료’에 해당하고,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바로 ‘일차 진료’를 한 것이지요.

일차 진료를 담당하는 진료 과목은 소아청소년과와 가정의학과가 가장 대표적입니다. 일차 진료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당 전문 진료 과목으로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맡습니다. 한국의 의료 여건상 동네에서 ‘의원’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면 이비인후과나 내과도 일차 진료를 한다고 봐도 틀리지는 않습니다.

부모가 딱 보기에도 눈의 문제나 피부의 문제다 싶다면 안과나 피부과를 찾아가도 됩니다. 하지만 알레르기결막염이나 바이러스성결막염 등은 대개 알레르기비염이나 기타 호흡기질환과 연관된 경우가 많아 결국은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다시 봐야 하는 상황이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아토피피부염도 알레르기비염이나 천식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서 결과적으로 두 걸음을 할 수 있지요. 아이가 감기에 걸리거나 중이염에 걸렸을 때 소아청소년과나 이비인후과의 처방 약이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흔히 피부과나 이비인후과의 약이 소아청소년과에 비해 ‘독하다’고도 말하는데요. 이 독하다는 개념이 뭔지 다시 따져볼 일이지만, 의사로서 말하자면 그래서도 안 되고 그럴 리도 없다는 겁니다.

어떤 증상이 있을 때 어떤 과의 진료가 적절한지는 의사 개개인의 진료 원칙에 좌우되는 면이 더 크다고 봅니다. 적어도 한국의 의료 환경에서는 그렇습니다. 드물게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지만 감기나 중이염, 폐렴, 장염 등 흔한 질환 이외에는 모두 대학병원 해당 과로 의뢰하는 의사도 있고, 이비인후과 전문의지만 일차 진료를 맡은 이상 소화기나 비뇨기 문제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열심히 진료하는 의사도 많습니다. 이것은 도덕적으로 옳고 그르다가 아니라 의사 스스로가 자신을 ‘일차 진료’ 또는 ‘전문 진료’ 중 어느 쪽으로 더 마음먹었느냐에 따른 결과라고 봅니다.

이렇듯 여러 예외 상황이 있음에도 기본적으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소아 및 청소년에 대한 전문적인 ‘일차 진료’를 할 수 있도록 수련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한 응급 상황이 아니라면 눈이든 피부든 심리 문제든 일단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를 찾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profile. 정재호

두 아이의 아빠이자 대전엠블아동병원 소아청소년과 원장. 소아청소년과야말로 부모들이 마음껏 육아 상담을 할 수 있는 곳이길 바라며 친근한 ‘동네 병원 선생님’이 되고자 노력 중이다. 칼럼을 통해 아이들의 질병·성장·발달·훈육 등 보편적이지만 가장 중요한 육아의 기본을 짚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