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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위클리에듀교보

위클리에듀교보 2017 no.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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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에듀교보는 행복한 아이, 즐거운 가족을 위해 교보생명에서 제공해 드리는 양육 도움 정보지입니다.


영어가 학습이 아닌 ‘운동’인 이유


대다수 한국인은 외국인을 만나면 ‘제대로 된 영어’를 구사하지 못해 절절맵니다. 그 괴로움을 너무나 잘 알기에 내 아이만큼은 영어로 고통받지 않길 바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부모들이 입소문난 영어 커뮤니티에서 알려준 학습법도 그대로 따라해보고, 성공한 엄마표 영어 멘토들의 강의도 찾아 듣지요. 그런데 ‘왜 이런 교수법이 좋은지’, ‘왜 그렇게 따라하는 게 옳은 건지’ 궁금하지 않던가요?

‘외국어로서’ 영어를 학습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알아야 하고 어떤 방식으로 영어에 접근해야 하는지 신경학적 관점에서 분석했습니다.

기획 박시전(베스트베이비 기자) 글 박순(<뇌과학으로 알아보는 혁신적 영어 학습법> 저자) 일러스트 이현주



인공지능 시대에 외국어 공부가 여전히 필요할까요?


구글 번역이나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이제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는 배울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식과 정보의 보고인 인터넷상에서 영어 사용자의 수는 2017년 6월 기준 9억8000만 명이 넘습니다. 부동의 1위인 거죠. 무엇보다도 새로운 최첨단 연구 성과 대부분이 영어로 된 학술지나 매체에 발표되고 있습니다. 영어는 단순히 미국이나 영국의 언어가 아니라 ‘국제 공용어’입니다. 단순한 회화 위주의 기초적 영어 능력이라면 조만간 기계 통번역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높지만, 특정 영역에서 전문적인 지위를 선점하고자 한다면 그 범용성과 양과 질의 차원에서 볼 때 영어 실력은 앞으로도 상당히 오랫동안 우리 아이들에게 ‘여전히’ 필수적이고 ‘유용한’ 도구가 될 겁니다. 하지만 외국어는 저와 제 아이들을 포함해 누구에게나 힘들고 어렵습니다. 이는 우리말이 아닌 외국어는 누구에게나 심각한 도전이 될 정도로 매우 미세한 밀리초(1/1000초) 단위의 운동 조절 능력, 고차원적인 사고력과 광범위한 기억, 장기간의 연습과 사회문화적 체험을 요구하기 때문이죠. 이번 편에서는 영어교육을 시작할 때 꼭 알아야 할 기본 원칙 2가지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외국어보다 우리말 우리글, 즉 모국어가 우선이라는 것, 그리고 영어야말로 극히 복잡하고 정밀한 운동 능력을 요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말, 우리글이 우선입니다


아이가 우리말을 언제부터 익히기 시작할까요? 놀랍게도 엄마 뱃속에 착상된 지 18주 이후부터라고 합니다. 다만 액체를 거쳐 전달되다 보니 소리의 세기가 약한 자음보다는 더 높은 소리 에너지를 가진 모음을 먼저 익힙니다. 독일 라이프치히의 막스플랑크연구소에서 생후 2~5일 된 프랑스 아기 30명과 독일 아기 30명의 울음소리를 분석해 발표한 자료(2009년)에 따르면 모국어 습득을 위해 필수적인 언어 멜로디를 이미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배운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태어난 지 일주일도 안 된 신생아임에도 프랑스 아기들은 프랑스어 특유의 뒤가 올라가는 억양을 따라 ‘아?앙~’ 하며 울고, 독일 아기들은 뒤가 내려가는 독일어 억양을 따라 ‘아?앙~’ 하고 울더랍니다. 또 생후 평균 33시간 된 아기 80명에게 외국어 모음 소리를 들려주었더니 안정감을 찾고자 정신없이 젖을 빨더라는 연구도 있습니다. 즉, 모국어 습득은 이미 엄마 뱃속에서부터 시작되므로 낯선 외국어에 공포감을 느끼거나 신기하게 여기는 것은 당연하다는 뜻 입니다. 아무리 외국어 교육을 일찍 시켜도 모국어보다 편안하고 자연스럽기는 어렵습니다. 외국어인 영어는 ‘낯설고 무서운 소음’으로 느껴질 수 있기에 언어교육을 할 때는 아이의 현재 심리와 인지적 상황에 따른 균형 잡힌 접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또한 모국어에는 ‘결정적 시기’가 존재하지만 외국어는 꼭 그렇지 않으니 혹시 늦더라도 염려하지 마세요. 아무리 영어가 유용한 도구여도 국어두뇌가 우선입니다.


영어는 ‘운동’입니다


10조원이 넘는 비용을 영어교육에 투자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 대다수는 간단한 영어 대화조차 힘들어합니다. 영어를 몸으로 익히지 않고 머리로만 공부해서는 평균 0.5초 간격으로 주고받는 대화의 탁구공이 자연스레 오갈 수 없겠죠. 몇 년 전 방영한 KBS <스페셜 다큐-당신이 영어를 못하는 진짜 이유>에서 언급했듯 교실에 앉아 수영을 책으로만 익힌 아이를 물속에 내던지면 과연 수영을 할까요? 당연히 몸으로 수영을 많이 해본 아이가 수영을 잘하겠지요. ‘영어의 바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어란 본질적으로 운동입니다. 신경학 교과서에서 언어에 대해 설명하는 장을 보면 ‘20-200-2000’ 법칙이 나옵니다. 단위는 밀리초(1/1000초)입니다. 여기에서 ‘20’은 20~80밀리초(0.02~0.08초) 만에 끝나는 자음의 지속 시간을 말합니다. ‘200’은 150~300밀리초(0.15~0.8초) 정도 지속되는 모음을 말하는데, 여기에 보통 강세(stress)가 얹힙니다. ‘2000’은 2초 정도이니 말소리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억양(intonation)의 일반적인 지속 시간입니다. 우리가 말을 할 때 동원되는 근육은 자그마치 200여 개에 달합니다. 입과 혀, 목, 가슴에 있는 수많은 근육의 움직임이 정확히 조율되어야 찰나의 변화에 따라 완전히 다른 자음으로 바뀔 수도 있는 말소리를 정확히 발성하게 됩니다. 고로 말이란 극도로 미세한 근육 운동 조절의 결과물인 셈이죠. 아기가 두 다리로 일어서려면 오랜 기간 수천, 아니 수만 번 넘어지며 기를 쓰고 연습해야 하는데, 훨씬 많고 섬세한 근육을 움직여야 하는 외국어 구사를 과연 ‘운동 훈련’ 없이 잘할 수 있을까요?



문법 또한 운동입니다. 위 그림은 <네이처 리뷰 뉴로사이언스>에 소개된 ‘말소리 처리 두뇌’ 모형입니다. 왼쪽 그림은 사람의 두뇌를 왼편에서 바라본 것이고, 오른쪽은 오른편에서 바라본 겁니다. 왼쪽 그림에서 Ⓑ로 표시된 파란 영역은 예전에는 ‘브로카 영역(Broca’s area)’이라 불렸던 곳입니다. 이 부위의 기능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문법적인 정보 처리입니다. 그런데 이 파란 영역의 오른쪽 구석이 바로 목(성대)과 혀와 입술의 근육에 명령을 내리는 운동 센터입니다. 평소에 우리가 오랜 기간 충분히 수련하다 보면 무의식적으로도 몸을 움직일 수 있듯이 운‘ 동 기억으로서’ 문법을 처리하다 보면 자동적이고 자연스럽게 언어를 구사하게 됩니다. 중고등학교 학생이라면 추상적인 사고 능력이 발달하므로 얘기가 달라지지만 영유아나 유치원생 또는 초등학생에게 명시적인 문법 교육을 강요한다면 내 몸을 움직이듯 자연스러운 영어가 아니라 뇌의 껍질(피질)로만 부자연스럽게 고민해가며 영어를 사용하게 되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profile. 박순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밌고 효과적으로 영어를 배울 수 있을지 고민하는 영어교육자. ‘외국어로서 영어’를 학습하는 데 있어 ‘뇌과학’이 제공한 중요한 단서를 바탕으로 신경학적 관점에서 ‘영어두뇌’에 대해 연구 중이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영어교육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에서 ‘신경언어학과 영어교육’을 강의하고 있다. <아이의 영어두뇌>, <뇌과학으로 알아보는 혁신적 영어 학습법>의 저자이며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중학사이버영문법>과 EBSLang <EBS 대표 영문법> 등 교재를 개발했다. KBS <스페셜다큐>, EBS <다큐프라임>의 자문위원으로도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