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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위클리에듀교보

위클리에듀교보 2018 no.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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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에듀교보는 행복한 아이, 즐거운 가족을 위해 교보생명에서 제공해 드리는 양육 도움 정보지입니다.


Auditory Imitation! 청각적 모방이 필요합니다


영어 사교육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이지만 정작 외국인을 만나면 ‘제대로 된 영어’를 구사하지 못해 절절매는 현실이 ‘대한민국 영어의 현주소’입니다. ‘외국어로서’ 영어를 학습하려면 우리가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는 게 효과적인지 신경학적 관점에서 분석했습니다. ‘영어두뇌’를 만들기 위한 세부 전략인 S.A.I.L 학습법 중 세번째 키워드인 ‘I : Auditory Imitation(청각적 모방)’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기획 박시전(베스트베이비 기자) 박순(<뇌과학으로 알아보는 혁신적 영어 학습법> 저자)

일러스트 이현주



초등학교 6학년생인 명훈이는 여덟 살이 넘어 영어 동요 CD를 들으며 듣기 훈련을 시작하고, 이후 매일 꾸준히 영어 DVD를 평균 1~2시간씩 시청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해리 포터> 오디오북을 10개월에 걸쳐 날마다 30분씩 청취하더니 7권 전집을 모두 완결했다고 하더군요. 명훈이처럼 아직 어린 나이의 초등학생이라면 우리말과 글을 배우는 방법과 비슷한 흐름으로 외국어를 익히는 게 바람직합니다. 우리가 자라며 모국어를 익힌 과정을 떠올려보세요. 결코 글자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소리를 듣고, 기억하고, 따라하다가 점차 능숙하게 우리말을 하게 되었죠. 텍스트를 보지 않고 ‘영어 말소리만 듣고 따라하는’ 활동이 꼭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귀가 운동기관?


사람의 귀 가장 깊은 곳에는 달팽이관과 전정부(vestibule)가 있는데 달팽이관은 소리를 감지하는 세포가 있는 감각기관이고, 전정부는 회전운동과 가속운동을 감지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귀의 전정부와 달팽이관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 사람의 귀는 소리를 듣는 ‘감각기관’이자 몸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운동기관’이기도 합니다. 전정부가 담당하는 가장 중요한 임무는 몸의 균형 유지와 협응으로 우리 몸의 근육 대부분의 움직임을 관장합니다. 특히 전정부는 척추 근육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요. 그래서 자세가 꾸부정한 사람은 전정부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아 남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무엇보다도 전정부는 말을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소뇌 등의 신경 구조물과 밀접히 협조하기 때문에 외국어 학습에 있어서도 중대한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귀로 ‘말하고, 노래하고, 읽고, 그림도 그린다’고 할 수 있지요. 무엇보다 운동 기능은 즉각적이고 자동적입니다.

영어를 익히는 일이 일종의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근거는 귀의 이러한 생리해부학적 메커니즘에서 비롯됩니다. 그렇다면 말소리를 듣고 따라서 말하는 청각적 모방과 소리내어 읽기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첫째, 말소리를 듣고 따라서 말하는 청각적 모방은 모국어 습득 과정에서 예외 없이 관찰되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아이는 엄마 아빠가 하는 말을 귀로 듣고 따라 말하면서 모국어를 익힙니다. 문자를 배우는 것은 그다음이죠. 따라서 아이가 영어를 배울 때 소리 내어 읽기 활동과 청각적 모방 활동이 함께 진행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둘째, 말소리를 귀로 듣고 따라서 말하려면 상당한 작업기억 능력이 요구됩니다.


그래서 귀로만 듣고 따라하는 ‘듣고 따라하기(듣따)’ 활동은 모국어가 거의 완성된 후 영어를 배운 아이들 대부분이 부담감을 느낍니다. 작업기억에 담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은 대개 ‘매직 넘버세븐±2’로 표현합니다. 이 용어는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심리학과 조지 밀러 교수가 자신의 논문에 쓴 것인데, 대부분 사람들이 7개 내외의 정보만 작업기억에 잠시 담아둔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원숭이-사과’ 정도는 누구나 쉽게 외우지만, ‘원숭이-사과-바나나-기차-비행기-백두산’처럼 길게 연속된 단어는 동요처럼 멜로디와 박자를 붙이거나 스토리 형식으로(‘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서로의 연상 관계를 구체화하지 않으면 금방 외우기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듣따’ 활동으로 영어를 익히는 데 단점이자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단점은 귀로 들은 정보를 입으로 낼 때까지 잠깐 저장하는 게 상당히 부담스러워서 영어 말소리에 익숙하지않은 학습자의 경우 쉽게 포기한다는 것이고, 장점은 영어를 묶음으로 기억해 익히도록 촉진하여 이른바 ‘청킹(chunking: 덩이짓기)’ 하는 습관을 들여준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Once upon a time, there lived a girl named Dorothy’라는 10개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의 경우 영어가 생소한 아이는 한 번 듣고 외울 수 없겠지만, [Once upon a time], [there lived], [a girl], [named Dorothy]라고 묶음으로 영어 소리를 입력하면 덩어리가 네 개에 그치다 보니 작업기억의 부담이 획기적으로 줄어듭니다. 듣고 따라하기 활동은 암기해야하는 단위의 수를 줄여 부담을 덜어주므로 학습자가 자연스럽게 청킹을 하도록 유도합니다.


셋째, 말소리를 듣고 따라하면 문자를 눈으로 읽으며 읊조리는 것에 비해 리듬, 박자, 음조, 인토네이션 등 비분절적 언어 요소를 그대로 모방하게 됩니다.


제 아이도 텍스트를 눈으로만 읽을 때는 무미건조하게 영어를 읊조리지만, ‘듣따’를 시키면 영어 특유의 소리 특성을 살려 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넷째, 청각적 모방 활동은 영어를 ‘운동’으로서 몸에 배게 하는 신경학적인 효과가 있으며 의사소통의 순발력을 키워줍니다.


귀는 운동기관이자 감각기관으로서 소뇌를 비롯해 절차적 기억과 관련된 두뇌 부위와 신경회로로 탄탄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절차적 기억은 자동적이고 즉각적이어서 실생활에 적합한 언어적 반응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필수적입니다. 신경학계의 최근 문헌에 따르면 몸으로 기억하는 절차적 기억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시각적인 정보 처리 능력에 비해 청각적 처리 능력이 월등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듣따’ 훈련 방법


청각적 모방 훈련을 하는 원칙은 CD 플레이어나 컴퓨터, 태블릿 PC 등으로 영어책 읽는 소리를 아이에게 들려주고 따라 읽게 하는 겁니다. 단, ‘매직 넘버 세븐±2’ 법칙에 따라 아이의 영어 실력에 맞춰 들려주면서 단위 수를 적절히 조절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는 문장 중 ‘In the garden all the apple-trees were in blossom’은 아홉 개의 단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한 번에 듣고 따라하기 어렵겠지요. [In the garden], [all the apple-trees], [were in blossom] 세 묶음으로 나누어 따라하게 하다가 아이의 작업기억 용량이 차츰 늘어나면 [In the garden], [all the apple-trees were in blossom] 정도 단위로 들려주고 따라 읽게 하는 것이죠. 아이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길어서도 안 되고, 너무 자잘하게 한 단어씩 쪼개어 들려줘도 안 되는 게 포인트입니다. 처음에는 짧은 묶음으로 시작해 서서히 덩어리를 늘려가는 방식이 바람직합니다. 책 소리 내어 읽기와 말소리만 듣고 따라하는 청각적 모방 활동을 꾸준히 하면 아이는 이제 스스로 영어책 읽을 준비를 갖추게 됩니다.